2026년 7월, 민선 9기가 막 출범했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공교로운 데가 있다. 민선 8기의 시작과 챗GPT의 등장이 거의 한 계절 차이로 겹친다. 인류가 생성형 AI라는 낯선 물건을 처음 손에 쥔 그 4년이, 지방정부의 한 임기와 통째로 포개진 셈이다.
그 4년을 ‘허송세월’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처음이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공직 사회가 신중했던 것은 흠이 아니다. 개인정보와 보안, 조달과 예산의 절차, 책임 소재의 불확실성 — 행정이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이유는 늘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임기를 ‘실패’가 아니라 탐색기라고 부른다. 손에 익히고, 겁도 내보고, 여기저기 찔러보던 시간.
다만 탐색이 4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같은 태도로 4년을 더 보낸다면, 그건 더 이상 탐색이 아니다. 낙오다. 민선 9기의 4년은, 좋든 싫든, 그 갈림길 위에서 시작된다.
AI는 이제 ‘도구’가 아니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다.
지난 4년간 AI는 대체로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것’으로 취급됐다. 관심 있는 몇몇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챗GPT를 써보는 정도, 혹은 홍보용 이벤트로 한 번 소비되는 정도. 도구는 원래 그렇게 다뤄진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마는 것.
그러나 지금 지자체가 마주한 현실은 도구를 만지작거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고, 일할 사람은 모자란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더는 은유가 아닌 지역에서,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바로 여기서 AI의 성격이 바뀐다. AI는 ‘업무를 조금 편하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라지는 인력을 메우고 지역을 지탱하는 생존 경쟁력이 된다. 어떤 지자체가 이걸 먼저 체질로 삼느냐가, 앞으로 지역 간 격차를 가르게 될 것이다.
도구는 선택이지만, 생존은 선택이 아니다. 관점이 여기까지 오면, 그다음 질문들이 전부 달라진다.
진짜 혁신은 ‘기능’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관점이 바뀌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가, 지난 4년이 남긴 가장 뼈아픈 교훈이 있는 자리다.
그동안의 AI 교육은 대개 ‘기능 체험’에 머물렀다. 프롬프트는 이렇게 넣고,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고 — 두 시간짜리 특강이 끝나면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자리로 돌아갔고, 다음 날이면 어제까지 하던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도구 사용법은 배웠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어떤 버튼을 누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물을 줄 아는가’**에서 갈린다.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설계하고, 무엇을 AI에게 맡기고 무엇을 내가 쥘지 판단하는 힘 — 이 ‘질문하는 능력’이야말로 혁신의 근간이다. 기능은 반년이면 낡지만, 질문을 설계하는 사고력은 어떤 도구가 와도 살아남는다.
그러니 민선 9기의 AI 교육은 ‘툴 사용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한 번 체험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스며드는 역량으로.
개인기에서 시스템으로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는 조직을 바꾸지 못한다. 지난 4년 AI 활용이 ‘일부 열정적인 공무원의 개인기’에 그쳤다면, 다음 4년의 과제는 그것을 제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기획에서 복지, 농업에 이르기까지 행정 전반의 업무 흐름에 AI를 어떻게 연계할지를 개인의 재량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것. 예컨대 ‘어떤 업무는 AI에게 위임한다’는 원칙을 조직의 규범으로 명문화하는 시도까지 나아갈 수 있다. 정부가 내건 ‘AI 강국’ 목표도, 결국 각 지자체의 이런 구체적인 제도화가 없으면 구호에 머문다.
개인기는 사람이 떠나면 사라지지만, 제도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다.
(여기에 상득 님이 실제로 추진 중이거나 목격한 제도화 사례 — 조례, 지침, 프로세스 개편 등 — 를 한 가지만 넣으면 이 문단이 슬로건에서 증거로 바뀝니다.)
그리고,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 Human Premium
여기까지는 ‘효율’의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다음에 있다.
AI에게 반복 업무를 넘기면 시간이 남는다. 그 남은 시간이 어디로 가느냐 — 이것이 민선 9기의 진짜 시험이다. 솔직히 말하면, 확보된 시간은 저절로 좋은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버려 두면 또 다른 서류와 회의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이 재배치는 자연히 일어나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선택이다.
무엇을 위해 사람을 비우는가. 나는 그 답이 현장이라고 믿는다. 민원 창구 너머의 사람, 복지의 사각지대, 손이 부족한 농촌 — AI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거기 있다. 공감하고, 판단하고, 관계를 맺는 일. 기계가 문서를 처리하는 동안, 사람은 사람에게 간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Human Premium이다. AI가 흔해질수록,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의 값은 오른다. AI 행정의 최종 목표는 ‘기계처럼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해준 만큼 더 사람다운 일에 집중하는 공무원이다. 효율화가 목적이 아니라, 효율화가 열어준 자리에 사람을 다시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민선 9기를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
4년 뒤, 우리는 이 임기를 무엇으로 기억하게 될까.
‘누가 AI를 더 빨리 도입했는가’로 기억한다면, 그건 절반의 성공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누가 AI로 사람을 더 사람답게 일하게 했는가.’
도구는 선택이지만 생존은 선택이 아니고, 그 생존의 끝에서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민선 9기의 4년이, 그 방향으로 흐르기를 바란다.